성인
이 아가타

1784~1839
이호영의 누이,
신앙심으로 꺽이지 않는 용기
신앙 고백으로 체포되어 순교
성녀 이소사*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고, 1838년에 순교한 이호영 베드로(Petrus)의 누님입니다. 그녀는 17세의 나이로 어느 외교인에게 출가하여 3년을 살다가 남편과 사별했는데, 현석문 카롤루스는 기해일기에서 아가타의 생활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얼마 아니 되는 가산마저 없이 한 후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과 함께 근근이 살았는데, 그때에 그녀가 당한 고난은 필설로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은 곤궁 중에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 화평한 기색과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아니 하였으니. 그녀의 착하고 아름다운 언행을 모두 기록하기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1835년 2월 어느 날, 포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이 아가타는 동생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녀의 올케마저 잡아가려 하자, “이 사람은 죄가 없으니 내버려두시오” 하고 말하여 올케만은 어린애들과 노모를 돌보게 하였다고 합니다. 판관 앞에 불려나간 이 아가타는 모진 매를 맞고 주리를 틀리었으나, 조금도 겁내는 빛을 보이지 않았고 또한 그녀의 용기는 조금도 꺾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번은 아가타를 옥에서 끌어내어 무수히 난타한 다음 옷을 벗겨 높이 매달아 능욕하기도 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오직 “배주(背主) 하지 못하겠습니다.”라는 한마디의 대답뿐이었습니다. 이 아가타는 3년 남짓 오랜 옥고를 치른 끝에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1839년 5월 24일, 그녀는 여덟 명의 다른 신자들과 함께 달구지에 태워져 포청을 떠나 형장으로 향했습니다. 아가타는 우마차 위에서도 다른 때와 같이 온화한 기색으로 눈을 내리뜨고 있었고, 우마차에서 내리면서 십자 성호를 긋고 조용히 칼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56세였습니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되었습니다.
*‘소사’는 성씨나 이름이 아니라, 조선 후기 교우촌에서 신자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던 비공식 별칭입니다.
따라서 공식 성명은 ‘이 아가타’이며, 교회 문헌에서도 세례명만을 기준으로 표기합니다.
흔히 ‘이소사’라고 붙여 쓰면서 ‘소사’를 한국식 이름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세례명과 무관한 별칭입니다.
이미지 출처: (좌)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 (중앙)확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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