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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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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이문우 요한(Joannes)은 경기도 이천 동산 밑 마을의 양반 교우 집에 태어났으며 경천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러나 5살 때에 고아가 되어 서울에 사는 신자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문우 성인은 어려서부터 양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는 독신생활을 소원하였으나 양모의 원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결혼하는데 동의하였고 가장으로서 좋은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이 세상을 일찍 떠나자, 다시는 혼인하지 않고 수덕생활을 실천하는데 전념하며 신자들을 도와주는 데 헌신하였습니다. 


  요한은 1년 이상 모방(Manbant, 羅) 신부를 따라 지방으로 다니며 복사의 일을 했고, 1839년의 박해로 옥에 갇힌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활동을 하였으며, 또한 주교와 신부들이 숨어 있는 이곳저곳으로 찾아가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러 차례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순교한 후에는 교우들과 함께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이름이 알려져 있어 체포될 위험이 많았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요한은 7명의 신자와 더불어 위험을 무릅쓰고 성직자들의 시체를 찾아 노고산에 모신 다음에 시골로 피신하기 위하여 친구 집에서 나오다가 붙잡혔습니다. 처음에는 그 역시 한동안 당황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천주께서 나를 부르신다. 천주께서 특별한 은혜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시는 소리에 대답을 아니 할 수 있겠는가?” 하며 오라를 받고 포도청으로 끌려갔습니다. 포장의 온갖 회유와 계략적이 말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임금님의 명령에 복종하려면 만물의 조물주이신 대군대부를 배반해야 할 것인데, 죽어야 한다 해도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관장님이 말씀하신 바는 모두 오래 전에 생각한 것이오니, 더 이상 강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술과 음식을 주는 등 또다시 여러 방법으로 설득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으므로 도둑들이 갇혀 있는 감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요한은 도둑들의 감방에서 지냈는데 그들 중에는 배교자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문우 성인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 불쌍한 사람들이 전에는 어쩌면 나보다 더 착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멸망하지 않았는가! 천주여, 제 마음 약함을 도와주소서.” 


  이윽고 형조로 이송된 요한은 그곳에서도 굳센 마음으로 신앙을 증거했으며, 마침 그곳에 있던 12명의 용감한 형제 자매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양부모와 교우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옥중 교우들의 신앙생활,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주님께 대한 사랑, 교우들이 주님 사랑을 저버리지 않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이문우 성인은 옥에 들어온 지 거의 3개월이 되던 1840년 2월 1일, 다른 두 동료와 함께 서울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이문우 성인은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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